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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사도세자의 비극..

사도세자의 비극을 읽고…

 

사조세자의 묘 영릉 

그냥 두서없이 생각나는대로 몇자 끄적여본다. 내용도 시간나는대로 덪붙이자..

 조선시대의 최고비극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도세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의 축복속에 태어났다.
삼종의 혈맥이라 일컬어지는 귀한 자손에서 영특한 아이가 태어났다 하여 모두가 기뻐했다.
실제 그의 어린시절 자신이 지은 시문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등 총명함을 엳볼수 있게 한다.
영조도 그런 사도세자의 모습을 보고 몹시 기뻐했다고 한다.

문제는 영조였다.영조는 즉위시부터 정통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그의 선왕 경종은 몸이 병약했고 후사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경종의 선왕 숙종은 그의 이복동생 연잉군(후에 영조)을 세제로 택해달라는 부탁을 노론에게 한다. 노론은 연잉군을 세재로 택하고 경종의 병약함을 근거로 연잉군의 대리청정까지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아무리 후사가 없다고 하지만, 세자가 아닌 세제(당시 연잉군이였던 영조)를 택한다는것은 문제가 없을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대리청정까지…

결국 경종은 소론 이광자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친정을 하게 되고..당시 대리청정을 주장했던 노론 4대신을 귀양보냈다가..후에 사사하고 많은 노론들도 숙청하게 된다.

어찌보면 사실 이때부터 연잉군의 반역자의 수괴였다. 그러나 경종은 연잉군을 숙청하지 않았다.
시실 이때 연잉군의 목숨을 바람앞의 등불이였다. 경종의 말한마디면 바로 사사될수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연잉군 자리를 버리고 은거생활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연잉군은 왕권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결국 목숨을 담보로 한 생활이 계속되었고 경족은 그를 살려두었다.

후에 경종의 병환시 그는 당시 어의가 현재 병과 상극이라고 절대로 올리면 안된다고 이야기했던 음식 - 꽃게, 감 등을 경종에게 올린다. 결국 그것이 원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경종은 죽고 왕세제였던 영조가 즉위하게 된다.

이일로 당시 소론은 영조의 경종 독살로 의심하고 그를 추궁하고 이런 이유로 노론과 영조는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사도세자는 어린시절 경종을 모시던 소론의 나인들에 의해 길러지게 된다.
그들은 경종의 독살을 믿고 있는 이들이였다.
그들에 의해서인지는 알수 없지만 어쨋든 사도세자는 소론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이것은 노론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행동을 반역으로 규정하여..죽음으로 몰고 갈수 있는 일이였다.
결국 노론은 사도세자의 즉위를 목숨을 걸고 막아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영조도 자신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아들을 가만 두고 보지 못하게 된것이다.

 

사도세자가 경종처럼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효종을 닮아 무인 기질이 있던 사도세자는 자신의 입장(소론지지)을 명확히 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목숨과 직결지을수 있는 것이였으므로 노론은 방치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마저도 아버지를 따라 남편을 버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영의정 홍봉한으로 뼛속까지 노론이였다. 그렇게 그녀는 오히려 사도세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스파이가 되었다.
후에 그녀는 남편을 버린것처럼 아들(정조)까지 버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남편을 버렸을지언정 아들마저 버리진 않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온통 적으로 둘러쌓인 정국에서 사도세자는 불안해했고, 결국 노론의 음모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후에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을 통해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이 있는것으로 묘사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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